인터벌 후반이나 레이스 막판, "허벅지가 탈 나서" 페이스가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대부분의 러너는 그때 다리 근육을 탓한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연구는 범인이 다리가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호주 연구진이 경기력 좋은 러너 6명을 대상으로 3차원 모션 센서를 부착해 피로를 유발하는 훈련 프로토콜을 수행한 결과, 피로로 인한 생체역학 변화의 대부분이 하지가 아니라 몸통과 골반에서 나타났다.

연구는 러닝 이코노미 테스트 2회, 전력 질주의 2km 타임트라이얼 2회, 15~21분간의 고강도 인터벌을 연달아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피로가 쌓일수록 러닝 이코노미(같은 속도에 필요한 에너지 효율)가 떨어졌고, 타임트라이얼 기록도 느려졌다. 주목할 점은 그 변화를 설명하는 핵심 요인이 다리 근육이 아니라 상체와 몸통의 자세 제어였다는 것이다.

피로가 오면 몸은 이렇게 무너진다

연구진이 관찰한 피로의 신호는 아주 미세하지만, 반복될수록 에너지 손실로 이어진다.

  • 전방 골반 경사 증가: 골반이 앞으로 기울면서 허리가 과하게 아치를 만든다.
  • 좌우 골반 쏠림(힙 드롭): 한쪽 골반이 아래로 떨어져 보폭이 비대칭이 된다.
  • 몸통·골반 과회전: 상체가 좌우로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옆으로 새게 한다.
  • 수직 변동(바운스) 증가: 몸이 위아래로 크게 출렁일수록 땅을 딛는 에너지가 낭비된다.

연구 저자인 그레이스 매코노키 박사는 "이 변화들은 미세하지만, 피로 상태에서 힘이 몸을 통해 전달되는 효율을 떨어뜨리고 러닝의 에너지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달리기를 다리 위주 운동으로 생각하면 직관에 반하는 결과지만, 오히려 그래서 훈련 방향을 바꿀 실마리가 된다.

코어 근력보다 중요한 것은 코어 지구력

달리기에서 코어가 중요한 이유는 "버티는 힘"에 있다. 짧은 시간 최대 안정력을 발휘하는 코어 근력보다, 42.195km 내내 자세를 유지하는 코어 지구력이 마라톤 러너에게는 훨씬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하이오주립대학의 물리치료사 멜리사 갤러틴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잘 기능하지 못한다"는 비유로 코어의 역할을 설명한다. 다리가 아무리 강해도 코어가 약하면 에너지가 바닥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새어나간다는 것이다.

  • 2015년 스포츠과학저널 연구: 코어 지구력이 향상된 러너는 러닝 이코노미가 최대 4% 개선된 것으로 보고됐다. 마라톤 기록으로 환산하면 몇 분 차이를 만드는 수치다.
  • 2019년 PLOS One 연구: 대학 운동선수 21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8주간 코어 트레이닝을 진행한 결과, 코어 지구력과 러닝 이코노미가 함께 개선됐다.
  • 코어 피로와 부상: 코어가 지치면 골반이 흔들리고, 그 충격이 무릎과 발목으로 전달되면서 부상 위험도 커진다.

코어 훈련,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코어 훈련은 헬스장의 윗몸일으키기가 아니라 자세를 유지하는 안정화 운동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 플랭크: 30초~1분씩 3세트. 버티는 동안 골반이 처지지 않게 유지한다.
  • 사이드 플랭크: 옆구리와 둔근을 자극해 좌우 골반 쏠림을 막는 데 효과적이다.
  • 데드버그: 등을 바닥에 대고 팔다리를 반대 방향으로 뻗으며 몸통이 흔들리지 않게 제어한다. 상체와 하체의 연결 감각을 키운다.
  • 버드독: 네 발 기기 자세에서 팔과 다리를 번갈아 뻗으며 골반의 회전을 억제한다.

주 2~3회, 달리기 전에 10~15분 정도면 충분하다. 달리기 직후보다는 컨디션이 좋을 때 하는 것이 자세가 무너지지 않아 효과가 좋다. 국내에서도 필라테스나 매트 코어 운동이 러너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GQ 코리아가 소개한 것처럼 리포머 필라테스는 한쪽 다리 중심 동작이 많아 달리기에 기능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체와 등, 달리기의 숨은 엔진

코어와 함께 상체 근육도 피로와 관련이 깊다. 팔을 뒤로 젖히는 동작을 담당하는 등 근육(광배근·승모근)이 지치면 팔 스윙이 짧아지고, 그만큼 다리의 추진력을 끌어내는 리듬이 깨진다. 연구에서도 피로 시 몸통의 회전과 기울임이 커지는 것이 확인됐는데, 이는 상체 근지구력이 떨어졌다는 신호다.

  • 풀업·로우 운동: 등 근육을 키우는 저항 운동을 주 1~2회 추가한다.
  • 팔 스윙 연습: 달리기 중 팔꿈치를 90도로 유지하고, 팔을 앞뒤로만 움직인다는 느낌으로 스윙한다.
  • 어깨 긴장 풀기: 피로할수록 어깨가 귀 쪽으로 올라가는데, 주기적으로 어깨를 내리고 턱을 살짝 뒤로 당기는 동작을 의식한다.

상체와 코어를 함께 단련하면 후반부 자세 붕괴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마라톤 30km 이후의 벽은 다리보다 먼저 "자세가 무너지는 것"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이를 뒷받침한다.

자세 붕괴를 감지하는 법

코어가 약한지 알아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피로한 상태에서 러닝 영상을 찍어보는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머리가 앞으로 숙여지고, 골반이 처지며, 팔이 좌우로 흔들린다면 코어 지구력이 먼저 떨어진 것이다. 피로할수록 "힘을 주자"가 아니라 "길게 늘어서자"는 마음으로 척추를 세우는 것만으로도 효율이 살아난다.

다리가 아무리 강해도 코어가 받쳐주지 않으면 기록은 거기서 멈춘다. 이번 주 러닝 일정에 코어 운동 10분을 끼워 넣어보자. 다음 레이스의 후반 5km가 이전과 달라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