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트레일 러닝을 시작했을 때, 오르막에서 걷기 시작하면 러닝 워치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던 시절이 있었다. "기록"에 걷는 시간이 찍히는 게 창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가 한마디 했다. 페이스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파워하이킹'이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산악 러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오르막 걷기는 체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멀리 달리기 위한 선택이다.

실제로 최근 3년 사이 국내 트레일 러닝 인구는 25%가량 늘었고, 도심 주로가 붐비면서 숲길과 산길로 향하는 러너가 부쩍 많아졌다. 코스가 험해질수록 필요한 기술이 바로 파워하이킹이다. 달리기 전문 매체와 코치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언덕에서 걷는 법을 제대로 정리했다.

왜 오르막에서는 걷는 게 오히려 빠른가

가파른 오르막에서 달리기와 걷기의 에너지 효율을 비교한 연구를 보면, 경사가 일정 수준(15도 안팎)을 넘어서면 걷는 쪽의 에너지 소비가 더 적다. 같은 속도를 내더라도 말이다. 평지에서는 달리는 것이 압도적으로 효율적이지만, 급경사에서는 상황이 역전된다.

  • 걷기로 전환하면 심박수가 내려가고, 지쳤던 다리 근육에 휴식이 들어간다. 쓰는 근육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달리기 폼이 무너진 채 억지로 오르막을 뛰면 페이스는 페이스대로 느리고, 회복에 필요한 에너지만 낭비한다.
  • 경험이 많은 울트라러너일수록 "뛰어야 할 때 걷고, 걸어야 할 때 뛰는" 판단이 기록을 좌우한다고 입을 모은다.

언덕에서 걷기 시작하는 기준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경사부터 걸어야 할까.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경험 많은 코치들은 몇 가지 신호를 기준으로 삼는다.

  • 호흡 기준: 달리면서 말을 제대로 하기 어려울 정도로 숨이 차면 뛰는 효율이 떨어진 구간이다.
  • 자세 기준: 상체가 앞으로 과도하게 구부정해지고 보폭이 절반 이하로 쪼개지기 시작하면 걷기로 전환할 때다.
  • 경사 기준: 손을 짚고 싶을 만큼 가파른 구간, 짧은 스위치백이 이어지는 구간은 처음부터 걷기로 계획하는 것이 낫다.
  • 중요한 것은 "지쳤으니까 걷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걷는 것"이다.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이나 평지에서 다시 달릴 힘을 아껴두는 것이다.

제대로 걷는 법, 파워하이킹 자세

파워하이킹은 느긋한 산책이 아니다.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전진하는 동작이다. 프로 트레일 러너이자 코치인 브리트니 샤르보노는 오르막에서 몸을 세우고 가슴을 앞으로 여는 자세를 강조한다. 상체를 구부리면 폐가 눌려 큰 호흡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상체와 시선: 등을 펴고 가슴을 연다. 호흡이 깊어지면서 오르막에서의 산소 공급이 확연히 달라진다.
  • 엉덩이 활용: 걷는다고 다리 힘만 쓰면 허벅지가 먼저 지친다. 더 크고 강한 엉덩이 근육(글루트)에 체중을 싣는 느낌으로 추진한다.
  • 짧고 빠른 보폭: 보폭을 키우는 대신 발을 땅에서 빨리 떼는 것에 집중한다. 땅에 발이 닿아 있는 시간이 짧을수록 이동 속도가 빨라진다.
  • 팔 사용: 팔을 적극적으로 흔들면 다리 리듬이 따라온다. 요즘 트레일 러너 사이에서 인기인 폴을 쓰면 상체 힘으로 오르막을 당겨오는 느낌을 더할 수 있다.

파워하이킹도 훈련이 필요하다

파워하이킹은 그 자체로 훈련 효과가 있는 동작이다. 오르막 걷기를 반복하면 평지 스피드 훈련과 비슷한 근력 강화 효과가 쌓이고, 그 훈련이 쌓이면 결국 오르막을 달리는 페이스까지 빨라진다. 언덕 반복(힐 리피츠) 훈련과 병행하면 효과는 배가 된다.

  • 힐 리피츠 세션: 15~20% 경사의 오르막을 1~3분씩 파워하이킹으로 오르고, 천천히 내려와 회복하는 것을 6~8회 반복한다.
  • 롱 런 응용: 주말 롱 트레일 런에서 오르막 구간을 일부러 파워하이킹으로 처리하며 "걷기 전환 → 다시 달리기"의 리듬을 몸에 익힌다.
  • 체감 강도 기록: 매번 오르막을 오른 뒤 1~10 척도로 체감 강도를 남겨두면, 같은 구간의 기록이 어떻게 좋아지는지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레이스에서 걷기를 계획에 넣는 법

트레일 레이스에서 스플릿 목표를 세울 때, 언덕 구간까지 "몇 분에 오른다"고 정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 대신 구간별로 드는 힘의 정도(쉬움·보통·힘듦)를 정해두는 것이 효과적이다. 코치들은 레이스에서도 거의 페이스 목표를 주지 않고 강도 목표를 준다고 한다.

  • 코스 프로필을 미리 보고 "여기는 걸어서 넘는다" 구간을 정해두면, 당일 컨디션이 흔들려도 결정에 흔들리지 않는다.
  • 오르막 시작 전에 기어를 한 단계 낮추듯 미리 보폭과 호흡을 정리하면 급격한 심박 상승을 피할 수 있다.
  • 컷오프(제한 시간)와 싸우는 레이스라면 파워하이킹 속도를 미리 연습해두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억지로 뛰다가 힘이 빠지는 것보다, 꾸준히 빠르게 걷는 편이 오히려 전체 시간이 짧아지는 경우가 많다.
  • 산 정상에서 "멘탈로 이겼다"는 느낌을 목표로 삼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정상에 도달했을 때의 컨디션에 집중하면, 오르막이 징크스가 아니라 즐거움이 된다.

오르막에서 걷는 러너를 볼 때 "저 사람 지쳤나 보다"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다르게 봐야 한다. 그 사람은 체력을 아끼는 전략가다. 다음 언덕에서 한번 숨을 고르고, 가슴을 펴고, 빠르게 걸어 올라가 보자. 내리막에서 다시 달릴 힘이 남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