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에게 '로쏘 레드'가 있다면, 자전거 업계에는 '셀레스테 그린'이 있다. 연한 청록색인 이 색을 보면 주저 없이 한 브랜드가 떠오른다. 1885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문을 연 비앙키는 1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셀레스테 자전거를 타고 수많은 전설을 배출했고, 그 과정에서 이탈리아 자전거 산업 자체를 탄생시켰다. 자전거의 역사는 곧 비앙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아원 출신 소년, 밀라노 중심부에 작업장을 열다

에도아르도 비앙키는 1865년 밀라노에서 태어나 고아원에서 자랐다. 엔지니어 견습으로 시작한 그는 1885년, 스무 살의 나이에 밀라노 중심가 비아 니로네 7번지에 작업장을 열었다. 당시 유럽은 자전거 열풍이 한창이었고, 그는 부유한 밀라노 시민들을 상대로 페니파딩식 대형 바퀴 자전거를 만들고 있었다.

  • 비앙키가 주목한 것은 "모두가 쉽게 탈 수 있는 자전거"였다. 대형 앞바퀴 자전거는 타고 내리기부터 묘기 수준이었다.
  • 프랑스의 에르네스트 미쇼가 앞바퀴를 작게 만든 디자인에 영향을 받은 그는, 두 바퀴 크기를 같게 만든 혁신적인 설계를 도입했다.
  • 같은 크기의 바퀴는 생산성과 원가 면에서도 유리했고, 이 디자인은 롬바르디아 지방의 제조사들에 곧바로 복제되며 이탈리아 자전거 산업의 시초가 되었다.

레이싱의 시작, 공기 타이어와 함께 달리다

자전거 경주는 자전거의 발명과 거의 동시에 시작됐다. 비앙키는 1897년 페르디난도 토마셀리를 내세워 레이싱에 뛰어들었고, 존 보이드 던롭이 발명한 공기 타이어를 장착한 자전거로 이탈리아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 1899년에는 당시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였던 프랑스 그랑프리를 제패하며 유럽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 이 무렵 비앙키는 동력 자전거에도 손을 댔다. 1902년 첫 오토바이 판매를 시작으로 자동차까지 생산 라인을 넓혔고, 자전거는 경주용·투어링용 등 7개 모델로 확장됐다.
  • 1908년 토마셀리가 회사 소속 자동차 레이서로 전향한 뒤, 비앙키는 팀 매니저 에르미니오 카베디니가 설계한 혁신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앞세운 본격적인 사이클 팀을 꾸렸다.
  • 그 성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주력 선수 조반니 로시뇰리는 1905년 밀라노-토리노(340km 내셔널 내구 레이스)에서 우승했고, 팀 동료 조반니 쿠니올로는 킹스컵을 들어 올렸다.

최초의 위대한 챔피언들, 지라르덴고에서 누볼라리까지

20세기 초반 비앙키는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오가며 최고의 이름들을 품었다. 자동차 경주의 전설 타치오 누볼라리는 후기 커리어에서 비앙키 350 프레차 첼레스테 모터사이클을 몰고 무려 95승을 쌓았다. 모토 비앙키 팀은 출전만 해도 대회 흥행을 보장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 사이클 쪽에서는 코스탄테 지라르덴고가 지로 디 롬바르디아, 밀라노-산레모 등 주요 대회를 휩쓸었다.
  • 회사는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산업체 중 하나로 성장했고, 1915년 한 해에만 자전거 4만 5,000대를 생산했다.
  • 지라르덴고는 이탈리아 최초의 '캄피오니시모'(챔피언 중의 챔피언)로 불리며 비앙키의 전설적인 라이더 계보를 열었다.

일 캄피오니시모, 파우스토 코피

비앙키 역사에서 가장 숭배받는 라이더는 단연 파우스토 코피다. 코피는 1940년 지로 디탈리아를 스무 살의 나이에 우승하며 화려하게 등장했고, 1942년에는 한 시간 주행 기록 45.798km를 세우며 시대를 앞서갔다. 비앙키의 하얀 셀레스테 저지를 입은 뒤에는 1947년 지로와 1949년 투르 드 프랑스 우승으로 이탈리아 국민적 영웅이 됐다.

  • 코피는 공기역학적 자세와 혁신적인 훈련법을 도입해 '근대 사이클링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 당시 만년 라이벌이던 지노 바르탈리와의 대결은 이탈리아를 둘로 나눈 국민적 드라마였다.
  • 세르세 코피가 파리-루베를 우승했을 당시 형 파우스토와 나란히 찍은 사진은 비앙키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남았다.

셀레스테의 계보, 지몬디와 판타니

코피 이후에도 셀레스테 자전거는 계속해서 승리의 주인공이었다. 펠리체 지몬디는 에디 머크스와의 숱한 접전으로 팬들의 기억에 남았고, 마르코 판타니는 1998년 지로와 투르를 같은 해에 석권하며 산악 구간을 지배했다.

  • 지몬디는 1965년 투르 우승을 시작으로 지로와 부엘타까지 그랜드 투어 3개를 모두 제패한 드문 완성형 선수였다.
  • 별명이 '일 피라타'(해적)였던 판타니는 가파른 산악 구간에서의 폭발적인 어택으로 셀레스테의 상징성을 20세기 말까지 이어갔다.
  • 비앙키는 이후에도 그란데 빌레(그랜드 투어) 무대에 꾸준히 머신을 공급하며 '우승하는 습관'을 유지해 왔다. 팀 전술과 선수 육성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브랜드 DNA로 남아 있다.

140년이 지나도 여전히 셀레스테인 이유

자전거 브랜드의 수명은 생각보다 짧다. 그런 시장에서 비앙키는 140년 넘게 같은 이름으로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제조사다. 그 비결 중 하나는 색이다. 셀레스테의 유래에 대해서는 밀라노의 하늘을 담았다는 설, 이탈리아 왕실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는 설 등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색이 100년 넘게 한결같다는 점이다. 시대가 변하며 프레임 재질은 강철에서 카본으로 바뀌었고, 변속기도 수동에서 전자식으로 진화했지만, 셀레스테만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전 세계 자전거 매장에서 셀레스테 프레임은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어쩌면 우리가 그 색에 끌리는 이유는, 그 안에 코피의 고독한 공격과 판타니의 폭발적인 어택, 그리고 한 고아원 출신 소년의 집념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셀레스테의 의미를 곱씹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