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 철인3종 탄생 비화를 다루며 "1982년 줄리 모스의 기어 들어가기(The Crawl) 이야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라고 예고했다. 그 장면은 철인3종을 세계적인 스포츠로 만든 가장 유명한 순간이지만, 사실 이 스포츠의 역사에는 같은 물이 빚어낸 훨씬 무거운 사건들도 함께 있었다. 결승선을 앞둔 투혼부터 물속에서의 갑작스러운 이별, 형제애의 드라마까지. 철인3종이 오늘날의 안전 규정을 갖추기까지 거쳐 온 사건·사고들을 돌아보면, "왜 철인3종은 이렇게 안전에 민감한가"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기어서라도 들어온 1982년, 'The Crawl'

1982년 2월, 하와이 코나에서 열린 아이언맨 월드 챔피언십은 ABC의 '와이드 월드 오브 스포츠' 중계진이 처음 카메라를 들고 간 해였다. 당시 23세였던 캘리포니아의 운동생리학 대학원생 줄리 모스는 생애 첫 철인3종에 나섰고, 예상을 깨고 여자부 선두로 러닝 마지막 구간까지 달렸다. 하지만 결승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점에서 극심한 탈진과 탈수로 다리가 풀렸고, 그녀는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결국 네 발로 기어서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고, 그 직전에 캐슬린 매카트니에게 1위를 내줬다.

이 장면은 "사람이 왜 그런 대회에 나가는 걸까"라는 질문과 함께 전 세계 수백만 가정에 전해졌다. 이후 모스는 2018년 회고록 《Crawl of Fame》을 내고 수많은 다큐멘터리에서 당시를 증언했으며, 6회 코나 우승자 마크 앨런과 결혼해 철인3종의 산 증인이 됐다. 'The Crawl'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기록이 아니라 정신이다. **"이기는 것보다 완주가 더 값지다"**는 철인3종의 모토가 이 장면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가 말하는 진실: 가장 짧은 구간이 가장 위험하다

하지만 같은 물은 때로 무섭다. 2017년 미국 내과학회지에 실린 대규모 연구(1985~2016년, 미국 30년간 500만 명 이상의 참가자 분석)는 충격적인 패턴을 보여줬다. 경기 중 발생한 돌연사·심정지 135건 중 약 3분의 2(90건)가 첫 구간인 수영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자전거 16%, 러닝 11%, 경기 후 회복 중 6%였다. 사망자 평균 연령은 47세였고 85%가 남성이었다. 거리별로 보면 절반가량이 스프린트 종목이었고, 이력이 확인된 68명 중 26명이 첫 참가자였다.

절대적인 빈도는 높지 않다. 영국 연구(2020년 발표, 2009~2015년 99만여 명)에선 10만 명당 0.5명 수준이었고, 마라톤과 비교해도 대회일 기준 사망 위험이 10만 명당 약 1.7명으로 마라톤(약 1명)보다는 높지만 여전히 극히 드문 사건이다. 문제는 "어디서" 일어나느냐다. 마라톤 사고가 주로 후반부나 결승 직후인 반면, 철인3종 사고는 대부분 경기 시작 직후, 가장 짧고 가장 강도가 낮은 구간에서 터진다. 수영이라는 종목 자체가 가진 위험이라는 뜻이다.

왜 하필 물속일까 — 아드레날린, 찬물, 그리고 패닉

전문가들이 꼽는 원인은 여러 겹이다. 첫째, 스타트 직후의 아드레날린 급증이다. 흥분 상태에서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면 평소엔 몰랐던 심장 질환이 부정맥으로 튀어나올 수 있다. 둘째, 찬물 반응이다. 차가운 물에 몸이 잠기면 팔다리의 혈액이 몸통 중심부로 몰리면서 혈압과 폐혈관 압력이 급격히 올라가고, 일부에선 '수영 유발 폐부종(SIPE)'이 찾아와 숨이 차고 기침이 나오다 위험해진다. 셋째, 오픈워터 경험이 적은 첫 참가자는 사람과 부딪히는 마스 스타트에서 패닉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물속에서는 쉴 수도, 신호를 보낼 수도 없어 구조가 육상보다 몇 배는 어렵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사망자 중 약 29%가 사고 전에 가슴 통증이나 비정상적인 호흡곤란 같은 경고 신호를 이미 경험했다는 회고 분석 결과다. "그냥 컨디션 문제겠지" 하고 넘긴 신호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진 셈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 연맹과 주최사는 수온별 웻슈트 규정, 구조요원·카약 배치, 참가자 수영 능력 확인 절차를 차례로 강화해 왔다.

프로 무대에서도: 코수멜의 브라운리 형제

사고만 있는 건 아니다. 2016년 9월 멕시코 코수멜에서 열린 월드 트라이애슬론 시리즈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철인3종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탄생했다. 러닝 막판까지 선두를 달리던 조나단 브라운리가 결승선을 얼마 남기지 않고 열사병으로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그 뒤에서 2위 경쟁 중이던 형 알리스테어 브라운리는 우승 기회를 버리고 달려가 조나단의 팔을 어깨에 둘러메고 끌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남아공의 헨리 스쿠먼이 1위로 들어왔고, 알리스테어는 조나단을 결승선 너머로 먼저 밀어 넣은 뒤(조나단 2위, 알리스테어 3위) 자신도 그 자리에서 쓰러져 의료진에게 옮겨졌다.

알리스테어는 인터뷰에서 "자연스러운 인간적 반응이었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판진도 그를 실격 처리하는 대신 경기 결과를 그대로 인정했다. 경쟁자인 스쿠먼이 우승한 레이스였지만, 세계가 기억한 1등은 형제였다. 이 장면은 '스포츠 정신'의 교과서적 사례로 지금까지 회자되며, 열사병이 프로 선수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현실적 위험임을 동시에 보여줬다.

한국에서도 일어난 일: 여주와 통영의 경고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2024년 8월 25일 경기 여주 당남리섬 남한강에서 열린 제8회 경기도지사배 전국 철인3종 대회에서, 수영 구간에 나선 30대 참가자가 1시간 만에 실종됐다가 약 2시간 뒤 숨진 채 발견됐다. 대회는 즉시 중단됐고, 경찰은 주최 측의 안전조치 이행 여부를 수사했다. 그리고 2025년 11월 15일, 경남 통영에서 개막한 통영 월드 트라이애슬론컵 첫날에는 40대 동호인이 수영 테스트를 받던 중 몸에 이상 징후를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고, 대회는 전면 취소됐다. 대한트라이애슬론연맹은 "참가자 안전 확보를 위한 모든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유족 측은 안전 관리 부실을 주장하며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두 사건 이후 국내 대회 현장에서는 수영 능력 사전 검증, 구조 인력 배치 기준, 이상 징후 발생 시 중단 요령에 대한 논의가 한층 힘을 얻었다. 한편 한강 잠실대교 인근에서 오픈워터 수영이 유행하면서 2026년 여름에도 물살에 휩쓸린 30대가 숨지는 사고가 나는 등, 대회가 아니어도 오픈워터의 위험은 우리 곁에 있다.

용기는 무모함이 아니라 한계를 아는 것

정리하면, 철인3종의 역사는 'The Crawl' 같은 투혼과 코수멜 같은 형제애가 만든 낭만과, 물속에서의 갑작스러운 사고가 만든 경고가 함께 쌓여 왔다. 그리고 그 경고는 하나같이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첫째, 심장 검진 — 가족력이 있거나 평소 가슴 통증·비정상적 호흡곤란을 느낀 적 있다면 대회 전 반드시 전문의 상담을. 둘째, 오픈워터 적응 — 수영장 실력과 바다·강 실력은 다르다. 첫 대회 전에는 반드시 실제 오픈워터에서 여러 차례 적응 훈련을. 셋째, 첫 대회는 짧게 — 통계적으로 사고는 스프린트의 첫 참가자에게서도 가장 흔했다. 마지막으로 물속에서 몸이 이상하다 싶으면 자존심 버리고 손을 들어 구조를 요청하는 것. 철인3종에서 가장 멋진 선택은 무리함이 아니라, 한계를 알고 돌아서는 용기다.

이번 편으로 '철인3종의 얼굴' 시리즈도 막바지다. 다음 편에서는 줄리 모스가 열어젖힌 이 스포츠를 정상에서 지킨 역대 대표 선수들을 소개한다. 데이브 스콧, 마크 앨런, 파울라 뉴비-프레이저까지 — 전설들의 기록과 훈련을 통해 '철인'의 기준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따라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