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인3종이 1974년 미국 샌디에고에서 시작됐다면, 한국은 정확히 13년 뒤인 1987년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와이 아이언맨 열풍이 국내에 전해지기까지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곁의 철인3종은 어땠을까. 수영장과 자전거, 러닝화만 있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생활 스포츠가 되기까지, 한국 철인3종은 동호인들의 손에서 시작된 4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글에서는 1987년 미사리에서 열린 국내 첫 대회부터 제주 국제대회의 부상, 전국체전 정식 종목 채택, 허민호의 올림픽 첫 출전, 그리고 최근의 대중화까지 — 한국 철인3종이 걸어온 길을 시간순으로 따라가 본다. 시리즈 1편에서 다룬 세계사와 겹쳐 읽으면, 한국이 세계 흐름을 얼마나 빠르게 따라잡았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미사리에서 시작된 한국 철인3종
한국에 철인3종을 처음 들여온 것은 다름 아닌 동호인들이었다. 마라톤과 자전거를 즐기던 이들이 하와이 아이언맨 경기 영상을 접하고 "우리도 해보자"며 뜻을 모았다. 그 결과 1987년 8월 2일, 김자헌 등을 중심으로 **대한트라이애슬론연맹(KTF)**이 창립됐다. 같은 해, 서울 미사리 조정경기장 일대에서 국내 첫 대회가 열리며 한국 철인3종의 역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가 국제적으로도 철인3종이 막 질서를 잡아가던 때라는 것이다. 국제트라이애슬론연맹(ITU)이 창설된 것은 1989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94년이다. 한국은 세계 연맹이 생기기 2년 전에 이미 자체 연맹을 만들고 대회를 열고 있었던 셈이다. 초창기 대회는 서울 도심 대신 지역 특성에 맞춰 바다와 호수가 있는 곳에서 열렸고, 이 흐름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0년대, 제주가 철인3종의 심장이 되다
1990년 10월 20일 ITU가 공식 설립되자 한국은 세계 연맹 48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이듬해 1991년 6월 아시아트라이애슬론연맹(ASTC) 창립에도 함께했다. 그리고 1991년, 한국 철인3종의 운명을 바꾼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제주에서 국내 첫 풀코스(킹코스) 대회가 열린 것이다. 수영 3.8km, 사이클 180km, 러닝 42.195km의 226km 코스가 제주도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제주는 이후 '한국 철인의 성지'로 자리 잡는다.
제주의 상승세는 멈추지 않았다. 1993년 7월 함덕해수욕장에서 국내 첫 국제 대회(올림픽 코스)를 성공적으로 치렀고, 1994년에는 '한국 방문의 해' 부대행사로 제3회 아시아 선수권 및 국제 트라이애슬론 대회를 유치했다. 1996년 2월 제주철인클럽이 결성되면서 지역 동호인 기반도 탄탄해졌다. 1998년 8월에는 제1회 회장배 전국선수권이 제주에서 열려 첫 국가대표 선수가 선발됐고, 당시 하프코스 종합 1위는 제주 선수 민갑호가 차지했다. 이 무렵 1997년 2월 대한체육회에 가맹했고, 같은 해 7월 속초에서 제8회 아시아선수권대회를 개최하며 국제 대회 유치 능력도 입증했다.
2000년대, 올림픽 종목과 함께 자란 국내 대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철인3종이 정식 종목이 되면서 한국에도 바람이 불었다. 2000년 2월 전국체전 시범 종목으로 채택된 데 이어, 2004년 제85회 전국체전에서 남자부가 정식 종목이 됐고 첫 우승은 문시은 선수에게 돌아갔다. 2006년에는 여자부까지 정식 종목에 포함됐다.
이 시기 국내 풀코스 대회의 상징도 탄생했다. 2000년 7월 열린 제주국제아이언맨대회는 '아이언맨 아시아 대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첫 대회부터 22개국에서 외국 선수 838명, 국내 선수 198명 등 총 1,036명이 참가하며 국내 유일의 국제 풀코스 대회로 발돋움했다. 이후 매년 7월 서귀포에서 개최되며 17시간 안에 226km를 완주하는 '철인'들의 등용문이 됐다. 협회 등록 선수도 1999년 말 719명에서 꾸준히 늘어나며 저변이 확대됐다.
2010년대, 국제 무대에 선 한국 선수들
2010년대는 한국 선수들이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시기다. 먼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장윤정이 여자부 동메달을 따며 한국 철인3종의 첫 아시안게임 메달을 안겼다. 그리고 2012년,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당시 22세의 허민호(서울시청)가 한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해 런던 올림픽에서 완주를 기록한 것이다. 이후 허민호는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도 국가대표로 나서 혼성 릴레이에서 활약했다.
주니어 무대의 성과도 이어졌다. 2016년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정혜림이 3위에 올랐고, 동아시아 경기대회에서는 허민호와 김지환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2024년에는 김규리가 카자흐스탄 콕셰타우 아시아컵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한국 철인3종의 세대 교체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2020년대, 무쇠소녀단과 함께 대중화되다
한국 철인3종의 최근 화두는 단연 '대중화'다. 2025년 tvN 예능 **'무쇠소녀단'**에서 진서연·유이·설인아·박주현이 철인3종에 도전하는 모습이 방영되면서,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인식이 퍼졌다. 이 프로그램은 기존 철인3종 팬뿐 아니라 일반 시청자에게도 스포츠의 매력을 전달하며 동호인 유입에 큰 역할을 했다.
지금 한국에는 초보자부터 풀코스 도전자까지 즐길 수 있는 대회가 연중 이어진다. 풀코스는 제주 서귀포(매년 7월)와 경기 여주 이포보의 그레이트맨 대회(매년 8월 말)가 양대 산맥이고, 스프린트·올림픽 코스 대회는 전국 해안·호반 도시에서 열린다. 대한철인3종협회(World Triathlon 회원)가 대회 일정과 운영을 총괄하며, 초보자 대상 강습과 합동 훈련도 활발하다.
40년의 기록, 이제 당신 차례
1987년 미사리에서 몇십 명이 출발선에 섰던 철인3종은, 40년이 지난 지금 수만 명의 아마추어가 즐기는 생활 스포츠가 됐다. 세계사를 13년 늦게 따라잡은 한국 철인3종은 이후 30여 년간 국제 대회 유치, 아시안게임 메달, 올림픽 출전이라는 성과를 하나씩 쌓아왔다.
이 흐름의 다음 장을 쓸 사람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제주 바다에서, 여주 이포보에서, 동네 수영장에서 — 출발선에 서는 순간 당신도 이 40년의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다음 편에서는 철인3종의 경기 종류와 대표 국제 대회를 살펴보며, 어떤 대회부터 도전하면 좋을지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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