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달리다 보면 10km 지점쯤에서 몸이 가볍게 느껴지는 순간이 옵니다. 훈련할 때보다 호흡이 편하고 다리도 가볍게 돌아가죠. 이때 "오늘 잘 풀린다" 싶어 속도를 올리는 러너가 많아요. 그런데 실제 기록 자료는 정반대를 가리킵니다. 이 구간이 레이스 전체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함정이에요.
중반 전략은 특별한 기술이 아닙니다. 몸이 가볍게 느껴질수록 페이스를 지키고, 급수대에서는 확실하게 마시는 두 가지뿐이에요. 이 글은 대규모 마라톤의 실제 구간 기록과 수분 섭취 연구를 바탕으로, 중반에 지켜야 할 원칙을 정리했습니다.
5~10km는 통계상 가장 빠른 구간
대규모 마라톤의 구간 기록을 모아 분석한 리뷰에 따르면, 참가자들이 가장 빠르게 달린 구간은 5~10km였습니다. 반대로 가장 느린 구간은 35~40km였어요. 다시 말해 대다수 러너는 초·중반에 속도를 올리고 후반에 무너지는, 앞이 빠르고 뒤가 느린 페이싱 패턴을 보입니다.
보스턴 마라톤 완주자 78,912명의 구간 기록을 분석한 2026년 연구는 이 현상을 네 유형으로 나눴어요. 이븐 페이싱 47.9%, 약한 양의 페이싱 31.9%, 강한 양의 페이싱 12.2%, 변동형 8.0%였습니다.
결과는 분명합니다. 이븐 페이싱 집단의 평균 완주 기록은 217분이었는데, 강한 양의 페이싱 집단은 276분이었어요. 무려 59분 차이입니다. 3시간 이내 완주자 가운데 82.0%가 이븐 페이싱이었고, 일반 참가자는 19.6%에 그쳤습니다. 중반에 참는 사람이 기록을 가져가는 셈이에요.
몸이 가볍게 느껴질 때가 오버페이스의 함정
중반의 함정은 통증이 아니라 기분 좋음으로 찾아옵니다. 5km와 10km를 지나며 몸이 가볍게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속도가 붙어요. 하지만 이 상승분은 훈련으로 만들어진 여유가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에너지를 미리 당겨 쓰는 신호입니다.
같은 연구에서 변동형 페이싱 집단은 마지막 구간에서 속도가 20% 넘게 떨어지는 이른바 '벽에 부딪힘'을 85.4%나 겪었어요. 중반의 크고 작은 속도 변동이 후반의 대붕괴로 이어지는 겁니다. 구간별 속도 편차도 상위권은 4% 안팎인데 하위권은 6~8%까지 벌어졌습니다. 잘 달리는 사람일수록 덜 흔들린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중반에는 목표 페이스보다 아주 살짝 늦게 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5~10km에서 1km당 몇 초를 아끼려다 30km 이후 몇 분을 통째로 잃는 계산은 언제나 손해예요.
페이스를 늦추는 것도 전략입니다
중반에 속도를 늦추라는 말은 천천히 달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계획한 속도를 그대로 지키라는 뜻이에요. 세계 정상급 러너들은 오히려 초반을 아끼고 후반에 빨라지는 전략을 씁니다.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는 2018년과 2019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전체 구간의 54~55%를 평균 속도보다 느리게 달렸고, 후반으로 갈수록 빨라지는 음의 페이싱을 보였어요. 자기 임계 속도의 94% 수준에서 출발해 여력을 남긴 겁니다. 반면 여성 기록 보유자들은 임계 속도의 96~98%라는 더 높은 강도로 달렸습니다. 성별과 체력에 따라 최적 강도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초반에 여력을 남긴다는 점이에요.
아마추어에게 이 전략은 더 중요합니다. 정상급 선수는 후반에 몰아쓸 근육과 에너지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대부분의 러너는 중반에 당겨 쓴 에너지를 후반에 되돌려받지 못합니다.
중반 급수대는 확실하게
탈수는 중반 페이스를 가장 조용히 무너뜨립니다. 체중의 2% 이상 수분을 잃으면 지구력 수행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어요. 70kg 러너라면 약 1.4리터를 잃는 지점이 기준선이 됩니다.
수분 섭취량을 두고는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섭씨 30도 환경에서 하프마라톤을 달리며 목마름에 따라 마신 집단과, 체중 감소를 2% 미만으로 유지하도록 계획적으로 마신 집단의 기록이 각각 89.8분과 89.6분으로 사실상 같았어요. 시간당 섭취량은 약 384ml와 1,380ml로 네 배 가까이 차이가 났는데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여기서 얻을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목마름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되고, 그렇다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것 자체가 기록을 좋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이에요. 무더위 하프마라톤 연구에서는 물 섭취가 적은 러너에게 나트륨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사례가 7.4% 나왔고, 대회 중 약 900ml가 예방선으로 제시됐습니다.
급수대 실전 요령은 단순합니다. 급수대가 가까워지면 페이스를 살짝 줄이고, 컵을 확실히 잡은 뒤 한 모금씩 나눠 마십니다. 한 번에 들이켜면 옆구리가 결리기 쉬워요. 물을 놓쳤다면 아까워하지 말고 다음 급수대를 노리는 편이 낫습니다.
중반 셀프 체크
| 확인 시점 | 볼 것 | 기준 |
|---|---|---|
| 5km | 오버페이스 여부 | 목표 페이스에서 1km당 5초 이내 |
| 10km | 호흡·심박 | 옆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강도 |
| 15~20분마다 | 수분 섭취 | 한 모금씩, 목마름 무시 금지 |
| 이상 신호 | 통증·복통·어지럼 | 즉시 페이스 하향 |
무릎이나 발에 통증이 오거나 복통이 생기면 당황하지 말고 페이스를 늦춰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몇 초를 잃는 것과 후반에 완주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차이예요.
마무리
중반은 화려한 구간이 아닙니다. 기록이 확 늘지도, 극적인 드라마가 생기지도 않아요. 하지만 완주 기록의 절반은 이 조용한 구간에서 결정됩니다.
다음 대회에서는 5km와 10km 지점에서 딱 한 번만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지금 이 가벼움이 계획된 속도인가, 아니면 미리 당겨 쓰는 에너지인가." 이 질문 하나가 후반 30km의 모습을 바꿔 놓습니다. 몸이 가벼울수록 손목의 페이스를 믿고, 급수대에서는 물 한 모금을 확실히 챙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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