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량은 그대로인데 기록이 더디게 오릅니다. 잠도 잘 자고 식사도 챙기는데 몸이 무겁습니다. 이럴 때 대부분은 근육과 훈련 계획을 먼저 의심합니다. 그런데 지구력 선수에게는 근육보다 먼저 볼 곳이 있습니다. 바로 피, 그중에서도 철입니다.
열심히 달릴수록 철이 빠져나갑니다
철은 산소를 나르는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재료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에너지 대사와 체내 산도 조절에도 관여합니다. 그래서 철이 부족해지면 근육 자체는 멀쩡해도 산소를 이용하는 능력이 먼저 떨어집니다. 국제 스포츠영양 학술지에 실린 리뷰는 지구력 선수가 철 부족에 놓이기 쉬운 까닭으로 늘어난 필요량과 부족한 식이 섭취가 겹치는 점, 그리고 운동 뒤 염증 반응과 헵시딘이라는 호르몬이 철을 몸속에 묶어 두는 점을 꼽았습니다.
달리기는 철을 직접 소모하기도 합니다. 발이 지면을 딛을 때마다 적혈구가 반복적으로 부서지는 발 착지 용혈이 대표적입니다. 최근 국제 의학 학술지에 실린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하루 43~51킬로미터를 약 700일 동안 연속으로 달린 46세 여성이 심한 철 결핍성 빈혈과 대퇴뼈 목 피로골절 진단을 받았습니다. 달리기를 멈추자 여덟 주 만에 혈액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땀으로도 철은 빠져나갑니다. 땀 1리터에 약 0.5밀리그램이 유실되고, 먹은 철 가운데 몸에 실제로 흡수되는 비율은 10% 남짓입니다. 잃은 만큼을 채우려면 열 배를 먹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헤모글로빈이 정상이어도 부족할 수 있습니다
건강검진에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정상이라고 나오면 대부분 안심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철은 저장고가 텅 빈 뒤에야 혈액 수치가 흔들립니다. 저장고를 보여 주는 지표가 페리틴입니다. 국제 환경보건 학술지에 실린 한 연구에서는 국제 무대에서 뛰는 비프로 여성 지구력 선수 열세 명 가운데 여섯 명, 곧 46%가 페리틴 30마이크로그램/리터 미만의 철 결핍이었습니다. 2025년에 발표된 국제 스포츠건강 학술지의 체계적 고찰은 여성 선수의 최대 60%가 철 결핍을 겪는다고 정리했습니다.
함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감기처럼 몸에 염증이 있는 상태에서는 페리틴이 실제보다 높게 나옵니다. 앞의 연구에서도 염증 지표와 페리틴은 상관계수 -0.66으로 뚜렷하게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감기를 앓은 직후나 힘든 훈련 다음 날 채혈한 결과는 실제보다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검사 시점도 중요합니다. 고교 크로스컨트리 선수를 11주 시즌 동안 따라간 연구에서는 시즌이 끝날 무렵 남자 17%, 여자 45%가 철 결핍으로 넘어갔고, 시즌 전 검사에서 걸러내지 못한 선수가 다섯 명이나 있었습니다. 한 번의 검사로 끝내지 말고 시즌 중에 다시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루에 얼마나 필요한가
숫자로 보면 필요량 자체가 일반인과 다릅니다. 국내 러닝 전문 매체가 정리한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구분 | 하루 철 필요량 |
|---|---|
| 일반 성인 남성 | 10밀리그램 |
| 일반 성인 여성 | 12밀리그램 |
| 주자(운동 손실 반영) | 약 20밀리그램 |
| 엘리트 장거리·마라톤 선수 | 20~25밀리그램 |
| 섭취 상한(15세 이상) | 40밀리그램 |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01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기준 한국인의 하루 철 섭취량은 평균 12.2밀리그램이었고, 권장량 대비 섭취율은 남자 110.6%, 여자 81.4%였습니다. 여성이 이미 권장량에 못 미치는 상태에서 달리기까지 한다면 철이 모자랄 조건이 갖춰집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철 결핍 빈혈 위험이 약 두 배 높고, 특히 폐경 전 여성이 그렇습니다.
한국인이 실제로 철을 얻는 통로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섭취 비중 상위 품목은 백미, 무청, 배추김치, 쇠고기, 달걀, 멸치, 두부, 바지락조개, 시금치, 김 순이었습니다. 쇠고기나 조개 같은 동물성 식품은 흡수율이 높고, 시금치나 김 같은 식물성 식품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밥과 김치에 기대는 식탁이라면 철 급원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충은 얼마나, 어떻게 할까
여기서부터는 연구 결과가 갈립니다. 먼저 긍정적인 근거입니다. 2025년 체계적 고찰은 철 결핍이 지구력 수행능력을 3~4% 떨어뜨리고, 하루 100밀리그램의 철을 최대 56일간 보충하면 수행능력이 2~20% 개선되며, 최대산소섭취량은 6~15% 올라간다고 정리했습니다. 2015년 국제 스포츠의학 학술지의 메타분석도 철 치료가 페리틴과 혈청 철, 트랜스페린 포화도, 헤모글로빈, 최대산소섭취량을 모두 끌어올렸다고 보고했습니다. 다만 이 메타분석에서는 치료 기간이 80일을 넘기면 페리틴 개선 효과가 가장 작았습니다.
반대 근거도 있습니다. 2018년 국제 스포츠의학 학술지에 실린 검토는 철 결핍이지만 빈혈은 아닌 선수 283명을 다룬 12개 연구를 모아 보니, 보충으로 수행능력이 좋아진 연구가 여섯 개, 좋아지지 않은 연구도 여섯 개였다고 밝혔습니다. 이 검토는 페리틴이 20 미만으로 낮은 선수에게 보충 이득이 더 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아주 낮은 용량도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2023년 국제 임상시험 학술지에 실린 무작위 대조 연구에서는 하루 3.6밀리그램을 4주간 복용한 선수들에게서 피로감과 기분 상태가 개선되었습니다.
정리하면, 철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보충이 분명히 도움이 되지만 부족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득이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사서 먹기보다 검사로 결핍을 확인하는 순서가 앞섭니다.
흡수를 높이는 식사법
철은 많이 먹는 것보다 잘 흡수시키는 것이 관건입니다. 같은 자료는 단백질과 비타민C를 함께 먹으면 철 흡수율이 높아진다고 안내합니다. 쇠고기 같은 동물성 단백질과 비타민C가 풍부한 과일, 채소를 한 끼에 묶어 두면 유리합니다.
보조식품은 용량에 주의해야 합니다. 보조식품 알약 한 알에는 철이 4~6밀리그램, 철제 의약품은 한 알에 50~100밀리그램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한이 40밀리그램이니 철제를 두세 알 먹으면 하루 상한을 가볍게 넘습니다. 보조식품은 하루 4~12밀리그램으로 아껴 쓰고, 철제는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 처방을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마무리: 기록이 멈췄다면 이 순서로 점검해 보세요
첫째, 계획을 늘리기 전에 혈액검사를 받으세요. 헤모글로빈과 함께 페리틴을 꼭 넣으십시오. 둘째, 채혈 시점을 고르세요. 감기를 앓은 직후나 힘든 훈련 다음 날은 피하고, 몸이 편안한 날로 잡는 편이 정확합니다. 셋째, 시즌 전 한 번으로 끝내지 말고 시즌 중에 한 번 더 확인하십시오.
셋째까지 확인했다면 나머지는 식사와 보충의 문제입니다. 철 급원을 한 끼에 몰아 먹기보다 동물성 식품과 비타민C를 나눠 챙기고, 보충은 결핍이 확인된 뒤에 시작하십시오. 기록이 정체된 이유가 훈련량이 아니라 피에 있었던 경우는 생각보다 흔합니다. 여러분의 다음 검진표에서 페리틴 한 줄을 꼭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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