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힐, 듀얼 슬라럼, 포크로스, 엔듀로를 넘나들며 레드불 램페이지까지 우승한 산악자전거의 전설 세드릭 그라시아. 그에게 추락은 직업의 일부였다. 그런 그가 2013년 인도양의 화산섬 라 레위니옹에서 열린 메가발란슈 대회에서 죽을 뻔한 사고를 당했다. 현장 의료진은 그가 살아남은 것 자체가 놀랍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사고의 영상은 지금,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응급처치 교육 자료로 쓰이고 있다.
"나 죽을 것 같아. 10분 남았어" — 그날 그라시아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차와 집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유언을 남기기 시작했다. 이번 글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자전거를 타는 우리 모두가 그 사고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정리한 것이다.
평범한 코너에서 벌어진 일
그해 라 레위니옹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흙길은 미끄럽고 질척했다. 코스 끝자락의 사탕수수밭을 가로지르는 트랙터 길, 아주 쉬운 구간이었다. 그라시아는 코너에 들어서다 앞바퀴가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바퀴가 멈춘 뒤에도 핸들바가 땅에 끌렸고, 그 핸들바가 바위에 걸리며 브레이크 레버가 돌아가 다리를 찔렀다. 일부 보도는 골반 골절의 파편이 동맥을 절단한 것으로 전한다.
그는 바지를 열어젖혔고, 다리에 주먹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려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대퇴동맥이 절단된 상태였다. 본능적으로 손가락으로 상처를 막은 그는 친구에게 "도와줘, 나 죽을 것 같아. 10분 남았어"라고 말했다.
대퇴동맥 출혈, 왜 몇 분이 생명을 가르는가
대퇴동맥은 심장에서 나온 혈액이 골반을 지나 다리로 내려가는 가장 굵은 동맥 중 하나다. 이 혈관이 끊기면 성인 기준 수 분 안에 체내 혈액의 상당량이 빠져나갈 수 있다. 출혈성 쇼크가 오면 의식이 흐려지고 혈압이 떨어지며, 방치하면 사망에 이른다.
- 다친 직후 그라시아는 "터널의 빛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는 것처럼 평화로웠다"고 회고했다. 몸이 위험을 감지하고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던 순간이었다.
- 그를 붙잡은 것은 친구들의 목소리였다. 한 친구가 그의 손 위에 무릎을 얹고 상처를 1시간 넘게 압박했다. 그 시간이 헬기가 도착할 때까지 버티게 한 힘이었다.
그날의 응급처치가 살렸다
그라시아의 생존에는 세 가지 응급처치 원칙이 작동했다. 모두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 직접 압박: 출혈 부위를 깨끗한 천이나 손으로 강하게 누르는 것이 1순위다. 그라시아는 손가락으로, 친구는 무릎으로 상처를 눌렀다.
- 침착함 유지: 출혈성 쇼크로 죽어가는 사람이 오히려 주변을 웃기고 있었다. 공포에 휩싸이면 판단이 흐트러진다. 그가 나중에 "사고 후 가장 중요한 것은 침착함"이라고 말한 이유다.
- 신속한 구조 요청: 자리를 뜨지 않고 119에 해당하는 응급 구조를 부르고, 헬기 착륙 지점까지 부상자를 안전하게 옮겼다.
운이 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 섬에 휴가를 온 관광객 중 한 명이 혈관 전문의였고, 헬기 이송 후 곧바로 수술이 이뤄졌다. 그라시아는 사흘 만에 직접 걸어서 병원을 나왔다.
사고 영상이 교과서가 되다
헬멧 카메라에 남은 그날의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인터넷에 퍼진 이 영상은 TV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됐고, 지금은 응급처치와 의학 교육 과정에서 '큰 출혈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자료로 쓰이고 있다. 한 스태프가 그를 알아보며 "어제 우리가 당신 영상을 봤어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기본적인 응급처치 지식이 한 사람의 목숨을 살렸고, 그 기록이 다시 많은 사람을 교육하는 선순환이 된 셈이다.
자전거 사고 현장, 우리가 해야 할 일
자전거는 스포츠인 동시에 도로 위 이동 수단이다. 한국도로교통공단 집계를 보면 2022년 한 해에만 자전거 교통사고가 1만 3,270건 발생했고, 196명이 목숨을 잃었다. 동호회 라이딩 중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사고 현장에서 기억할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현장 안전 먼저: 부상자를 차도 밖으로 옮기고, 뒤따르는 차량과 자전거에 사고를 알린다. 구조자가 다치면 아무도 돕지 못한다.
- 출혈은 직접 압박: 깨끗한 천이나 져지로 상처를 강하게 누른다. 중간에 확인하려고 손을 떼지 말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유지한다.
- 헬멧은 함부로 벗지 않는다: 머리 부상이 의심되면 목과 척추를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그대로 둔 채 구조를 기다린다.
- 의식과 호흡 확인: 말을 걸어 의식을 확인하고, 이상하면 즉시 119에 상황을 정확히 전달한다.
- 동맥 출혈이 의심되면: 피가 맥박에 맞춰 뿜어져 나오면 사타구니 안쪽(서혜부)의 대퇴 동맥 압박점을 손바닥으로 눌러 지혈을 시도한다. 지혈대는 사용법을 아는 경우에 한해 최후 수단으로 쓴다.
라이딩 전, 응급처치 교육 한 번이면 충분하다
그라시아의 사고 영상이 교육 자료로 남은 이유는 단순하다. 그날 현장에 있던 친구들이 '출혈이 나면 누르면 된다'는 상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 지식이 아니라 기본기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생과 사가 갈릴 수 있다.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헬멧과 조명을 챙기는 것처럼, 응급처치 교육도 장비 목록에 넣어 보자. 동호회 라이딩에서, 혹은 아침 출근길에서 누군가 쓰러져 있을 때, 그 한 번의 압박이 누군가의 10분을 벌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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