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평범한 러너예요." 70대에 세계기록을 세운 지니 라이스(Jeannie Rice)가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하는 말이에요. 그런데 그녀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평범'이라는 단어가 어색해집니다.
77세의 나이로 75~79세 마라톤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1500m 단거리부터 풀코스까지 10개가 넘는 세계 기록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한국이 깊이 얽혀 있어요.
서울에서 시작된 이야기
지니 라이스의 원래 이름은 김혜경이에요. 1948년 서울에서 여덟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어요.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가족은 서울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고,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서울로 돌아왔어요.
그녀는 어린 시절을 이렇게 기억해요. 숨바꼭질을 하고, 한국 무용을 배우고,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 쳤고, 학교 가는 버스비를 과자값으로 써 버리면서 도시를 걸어 다녔다고 해요.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지니 라이스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시작했어요.
30대에 시작한 달리기
지니 라이스가 달리기를 시작한 건 30대였어요. 살을 빼려고 시작한 운동이었죠. 1983년 오하이오의 '조니케이크 5마일' 대회가 인생 첫 레이스였고, 그때 경쟁과 동료애의 매력에 빠졌어요.
이후 커리어 동안 약 1,000회의 대회에 나섰어요. 하프마라톤이 약 300회, 풀코스 마라톤이 137회예요. 77세가 된 지금도 한 해에 30회 가까이 대회에 출전해요.
숫자로 본 기록
- 2024년 시카고 마라톤: 3시간 34분 32초 (75~79세 세계기록)
- 2024년 런던 마라톤: 3시간 33분 27초 (종전 기록을 1분 5초 단축)
- 75번째 생일 며칠 뒤 보스턴 마라톤: 3시간 33분 15초
70대 중반의 나이에 3시간 33분이라는 기록은, 20~30대 러너에게도 만만치 않은 성적이에요. 5마일(약 8km) 대회를 39분 56초에 끊었을 때도 그녀는 "더 빨리 달릴 수 있는데"라며 아쉬워했다고 해요.
과학이 주목한 이유
의학계도 그녀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요. 연구진이 그녀를 분석해 응용생리학 저널(Journal of Applied Physiology)에 결과를 발표했는데, 핵심은 최대산소섭취량(VO2max)이었어요.
놀랍게도 그녀의 VO2max는 20대 여성에 맞먹는 수준이었어요. 연구진은 "이렇게 높은 VO2max가 1500m부터 마라톤까지 폭넓은 거리에서 세계적 기록을 낼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고 적었어요. 나이가 들면 심폐 능력이 떨어진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은 사례죠.
물론 타고난 신체 조건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아요. 그녀는 매일 꾸준히 달리고, 지역 대회에 빠짐없이 나가고, 기록보다 꾸준함을 앞세웁니다.
한국과 다시 만나는 지점
지니 라이스는 2026년 8월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마스터스챔피언십 참가를 위해 한국을 찾을 예정이었어요. 대구 대회는 106세 참가자부터 황영조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무대로 화제가 됐어요.
국내에도 늦게 시작해 꾸준히 달리는 마스터스 러너가 많아요. 50대 중반에 마라톤을 시작한 러너가 2026 서울마라톤에서 2시간 54분 10초로 결승선을 통과한 사례는 많은 이들에게 자극이 됐어요. 70대에 "60대 초반과 비교해도 기록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마스터스 러너들도 있어요.
나이를 이기는 건 결국 꾸준함입니다
지니 라이스의 사례에서 배울 점은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기본이에요. 꾸준히 달리고, 대회를 즐기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 여기에 규칙적인 생활과 회복이 더해지면 나이는 기록의 변명이 되지 못해요.
달리기를 늦게 시작해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언제 시작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이어 가느냐예요. 80대에도 계속 달리고 싶다는 그녀의 목표처럼, 우리도 완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만해요.
지금도 지역 대회에 나가는 이유
지니 라이스는 대회가 열리면 거의 빠지지 않고 나가요. 1983년 첫 레이스였던 조니케이크 대회에도 매년 참가하는데, 그녀는 이 자리가 기록보다 사람을 만나는 곳이라고 말해요. 결승선을 통과한 뒤에도 다시 돌아가 친구들과 함께 들어오는 습관은 유명해요.
이 태도가 오랜 커리어의 비결이에요. 대회를 기록을 증명하는 무대가 아니라 즐거움을 확인하는 자리로 여기면, 결과와 상관없이 계속 나가게 돼요. 기록은 그 뒤에 따라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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