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업계에 관세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미국이 중국산 자전거와 부품에 대한 관세를 계속 올리면서, 아시아에 생산 기지를 둔 글로벌 브랜드들은 공급망을 다시 그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 와중에 가장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이는 곳이 바로 이탈리아다. 한때 세계 자전거 제조의 심장이었던 이탈리아가 생산을 다시 국내로 되돌리는 '온쇼어링' 바람을 타고 있다.
전성기 시절 이탈리아 자전거 산업은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빈치는 한때 연간 7만 대의 자전거를 이탈리아에서 생산했고, 피나렐로와 콜나고는 세계 최고 수준의 프레임 제조사였다. 캄파뇰로가 발명한 퀵릴리즈 축은 레이싱 역사를 바꾼 혁신으로 꼽힌다. 그 영광이 이제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생산 시대가 열린 이유
20세기 후반, 서구 대부분의 산업이 그랬듯 자전거 업계도 값싼 생산을 찾아 동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빈치, 콜나고, 피나렐로 같은 대형 브랜드는 생산의 상당 부분을 아시아로 옮겼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상당량의 제조 역량을 국내에 남겨두었다.
- 안장·새들: 셀레 로열(피직 포함), 셀레 이탈리아, 셀레 산마르코가 여전히 이탈리아에서 생산을 이어간다.
- 의류·슈즈: 시디, 노스웨이브, 카스텔리, 스포르트풀 등이 이탈리아에서 제품을 만든다.
- 헬멧·선글라스: MET, 카스크, 리마르, 루디 프로젝트가 이탈리아 생산의 큰 축을 담당한다. 독일 브랜드 아부스조차 헬멧 생산을 이탈리아에 두고 있다.
관세 전쟁이 부른 변화
미국의 대중국 관세는 자전거 업계의 오랜 공급망 가정을 뒤엎었다. 2025년 4월 기준 중국산 자전거와 부품의 일부 품목은 누적 관세가 80%를 넘어섰고, 이후 125%까지 오르는 품목도 생겼다. 미국 자전거 업계 단체는 이런 관세가 업계에 '치명적'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 예일대 예산연구소(Yale Budget Lab) 집계에 따르면 미국 성인용 자전거 수입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80%에서 2025년 38%로 급락했다.
- 대신 브랜드들은 캄보디아, 베트남, 말레이시아로 생산지를 옮기기 시작했다.
- 유럽에서도 EU의 반덤핑 관세로 인해 저가 중국산 유입이 줄면서, 이탈리아 내 전기자전거 생산이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빈치, 이탈리아 생산의 상징으로
이번 온쇼어링 흐름을 주도한 것은 단연 빈치다. 빈치는 최근 수백만 유로를 투자한 신형 시설을 본사에 조성하며, 하루 최대 1,500대를 조립할 수 있는 생산·조립 허브로 탈바꿈했다.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는 자전거 대수도 세 배로 늘렸다. 20세기 전성기 이후 가장 건강한 이탈리아 생산 체제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콜나고의 플래그십 모델 C68도 여전히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다. 프레임 빌더의 본고장으로서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은 대량 생산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가치로 남아 있다.
장인 정신의 대명사, 사르토
대형 브랜드의 온쇼어링과 별개로, 이탈리아에는 처음부터 '이탈리아 제조'를 고집해온 브랜드들이 있다. 1950년대 안토니오 사르토 형제가 시작한 사르토(Sarto)가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다른 브랜드의 하청을 맡다가 1983년부터 자체 프레임 설계·제작에 집중했고, 2003년부터는 카본 프레임으로 전환했다.
- 사르토의 프레임은 베니스 본사에서 전량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 커스텀 위브, 단조 카본 접합 등 최신 공법을 쓰면서도 '핸드메이드'의 정체성을 지킨다.
- 마케팅 디렉터 토마소 구소는 "우리의 생산은 진정한 장인 정신"이라며, 관세나 환율, 정치적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가치를 강조한다.
한국 자전거 시장에 주는 시사점
이탈리아 브랜드는 국내에서도 꾸준히 사랑받는 축에 속한다. 빈치, 콜나고, 피나렐로, 윌리어 같은 이름은 레이싱 팬에게 익숙한 '명가'다. 관세 전쟁의 직접 타격권에 있는 미국 시장과 달리 한국 시장은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결국 가격과 재고에도 영향을 준다.
자전거를 새로 장만하려는 사람이라면, '어디서 만들어졌는가'를 한 번쯤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기준이 된다. 대량 생산 시대에도 이탈리아에서 손으로 깎아 만든 프레임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 희소성은 값으로 환산되지 않는 매력을 지닌다. 관세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오히려 '제조의 본고장'이 다시 주목받는 아이러니를, 자전거 애호가라면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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