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준비물을 고르는 일은 마라톤과 비슷해 보이지만, 철인3종에서는 기준이 하나 더 붙습니다. 바로 **"젖은 발과 지친 다리로 얼마나 빨리, 불편 없이 전환할 수 있는가"**입니다. 수영을 마치고 물에 흠뻑 젖은 채 자전거를 타고, 다시 뛰어내려 러닝화를 신는 순간까지 모든 장비는 이 흐름 속에서 존재해야 합니다.

물론 기본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장비도 대회 당일 처음 신어 보는 것은 금물이고, 평소 훈련에서 익숙해진 것만 사용해야 합니다. 그 위에 '전환'이라는 조건을 더해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러닝화 — '대회용'보다 '전환용'을 먼저

철인3종에서 러닝화는 단순한 레이싱화가 아닙니다. 젖은 발을 빠르게 넣고, 끈 없이도 고정되고, 자전거 페달과 부딪히지 않는 신발이 이상적입니다.

  • **끈 대신 엘라스틱 레이스(락레이스 등)**를 쓰면 T2에서 묶을 필요 없이 신고 나갈 수 있습니다. 일반 끈이라도 미리 구멍을 바꿔 끼워 '슬립온'처럼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 **뒤꿈치 탭(신발 깃의 고리)**이 있으면 젖은 손으로도 쉽게 잡아당겨 신을 수 있습니다. 아식스 누사 트라이처럼 트라이애슬론을 겨냥한 모델은 아예 이런 기능을 기본으로 갖췄습니다.
  • 스피드보다 발이 붓는 것을 고려: 자전거 90km를 마치면 발은 평소보다 부어 있습니다. 마라톤 풀코스보다 반 사이즈 여유가 있는 편이 안전합니다. 국내에서 흔히 쓰는 일상 러닝화는 7만~8만 원대부터, 카본 플레이트 레이싱화는 30만 원을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인기 모델은 100만 원에 육박하기도 합니다. 대회용으로 비싼 카본화를 꼭 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환의 편함과 평소 익숙함이 더 중요합니다.
  • 국내 구매 팁: 러닝화는 정가보다 지난 시즌 모델이나 온라인 최저가를 노리면 부담이 줄어듭니다. 다만 중고 러닝화는 이전 주인의 발 모양이 길들여져 있어 추천하지 않습니다. 새 신발은 대회 2~3주 전에 사서 브릭 훈련에 실제로 끌고 나가 보고, 물집이 생기는 부위가 있는지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양말 — 신을 거라면 '젖어도 괜찮은' 얇은 것

양말은 취향이 크게 갈립니다.

  • 양말을 신는 쪽: 자전거 구간에서 이미 젖은 발에 신었던 양말을 그대로 쓰거나, T2에 마른 양말을 따로 준비합니다. 얇은 러닝 양말이 좋고, 물에 젖어도 살이 쓸리지 않는 재질인지 확인합니다.
  • 노삭스(맨발) 쪽: 전환 시간을 줄이려면 양말 없이 러닝화만 신고 달립니다. 이 경우 평소 훈련에서 맨발 러닝에 발이 익숙해져 있어야 물집 위험이 없습니다.
  • 젖은 발에 양말을 빨리 신는 꿀팁: 트랜지션 타월 위에 탈크(베이비파우더)를 살짝 뿌려 두면 발이 미끄럽게 들어갑니다. 국내 대회에서도 T2에 작은 탈크 통 하나면 충분히 쓸 만합니다.

의류 — 갈아입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시작

철인3종은 수영부터 러닝까지 같은 옷을 입는 트라이슈트(경기복) 문화가 기본입니다. 옷을 갈아입는 시간은 전부 기록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 트라이슈트 안에 러닝복을 입을 필요가 없습니다. 트라이슈트는 수영 후 물기가 빠르게 빠지고, 자전거 패드가 있으며, 달리기에도 불편하지 않게 만들어졌습니다.
  • 다만 추운 날씨 대회라면 러닝 구간용 **암워머(팔토시)**나 조끼를 트랜지션에 준비해 두었다가 T2에서 꺼내 입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여름 국내 대회에서는 캡과 선글라스면 충분한 경우가 많습니다.

캡과 선글라스 — 땀과 태양의 관리

러닝 구간은 오전 햇살이 가장 강해지는 시간대에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캡 또는 바이저: 자외선 차단과 함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 줍니다. 챙이 있으면 급수대에서 물을 끼얹을 때도 유용합니다. 접어서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경량 제품이 좋습니다.
  • 선글라스: 자전거 구간에서 쓰던 것을 그대로 착용하고 뛰어도 됩니다. 러닝 전용으로는 통풍이 좋고 가벼운 러닝 선글라스를 T2에 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젤과 영양 — 자전거에서 먹던 것을 이어서

러닝 구간 영양의 원칙은 **'대회 당일에 처음 먹는 것은 없다'**입니다.

  • 파워젤 등 에너지젤은 자전거 구간에서 이미 복용해 위장 상태를 확인한 제품을 러닝에서도 이어서 먹습니다. 카페인 젤은 효과가 확실하지만, 평소 카페인 섭취가 적다면 후반에 쓰는 편이 안전합니다.
  • 여름 국내 대회라면 전해질도 신경 씁니다.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열리는 국내 대회는 폭염 속 러닝이 많아서, 소금(전해질) 정제나 이온음료를 젤과 함께 준비하는 선수들이 늘었습니다. 자전거에서 미리 전해질을 보충해 두면 러닝 구간의 종아리 쥐남(근육 경련)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 국내 대회는 대부분 러닝 코스에 급수대가 있지만, 물과 이온음료만 제공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젤은 자급자족이 기본입니다. 젤을 넣을 주머니가 없는 트라이슈트라면 러닝 벨트나 번호벨트 겸용 포켓을 활용합니다.

번호벨트 — 등과 가슴을 오가는 1초

러닝 구간에서는 번호를 앞(등)·뒤(가슴)로 돌려가며 달립니다. 자전거는 뒤, 러닝은 앞이 규정인 대회가 많아서, 번호를 옷에 직접 고정하면 매번 옷을 갈아입어야 하지만 번호벨트(레이스벨트) 하나면 1초 만에 해결됩니다.

  • 번호벨트에 번호를 미리 부착해 두고, 자전거 번호판과 바디 마킹은 대회 전날 미리 부착합니다.
  • 번호벨트 겸용 포켓 제품을 쓰면 젤과 작은 물품을 넣을 수 있어 실용적입니다.

철인3종 러닝 준비물을 고를 때마다 이 질문을 던져 보세요. "이 장비는 수영 물기와 자전거 피로 속에서도 문제없이 작동하는가?" 마라톤에서 통했던 기준만으로 고르면, 정작 T2에서 끈을 묶는 30초, 젖은 양말이 불편한 10km가 아깝습니다. 장비는 대회 전 훈련(브릭 세션)에서 실제로 조합해 보고, 대회 당일에는 그 조합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마라톤 경력자들이 철인3종 달리기에 적응하는 법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