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라이딩에서 자전거는 기록을 만드는 도구라기보다, 끝까지 살아남게 해 주는 동료에 가깝습니다. 세계일주 기록 보유자인 라엘 윌콕스가 최근 550km 울트라 그래블 레이스 '트라카 560'에서 4위를 기록하며 탄 자전거를 보면 이 점이 특히 선명합니다. 화려한 최신 모델이 아니라, 오래 버티는 데 초점을 맞춘 셋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녀의 스페셜라이즈드 다이버지 셋업을 통해 장거리 그래블 장비의 원칙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윌콕스는 550km 구간을 29시간 넘게 달려 여자부 4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결승 직후 그녀는 "눈이 감길 정도로 피곤했다"고 말하면서도, 자전거에 대해서는 "완벽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완주 직후 차체에는 먼지가 두껍게 앉아 있었습니다.
왜 로드바이크가 아니라 그래블인가
- 타이어 클리어런스 — 다이버지는 최대 55mm 타이어까지 들어갑니다. 반면 로드 계열 엔듀런스 모델은 40mm 수준입니다. 거친 노면과 비포장 구간이 섞인 코스에서는 이 차이가 큽니다.
- 편안한 지오메트리 — 레이스 지향 모델보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자세를 만들어 줍니다. 29시간을 앉아 있으려면 공격적인 자세는 독이 됩니다.
- 수납과 마운트 — 다운튜브 내부 수납과 다수의 마운트 포인트가 있어, 짐을 프레임에 분산할 수 있습니다.
윌콕스는 앞뒤 모두 폭 50mm 타이어를 선택했습니다. 림은 카본, 뒤쪽 림에는 공기압 센서가 통합되어 있어 주행 중 압력 관리가 가능했습니다. 거친 길에서 타이어가 넓으면 접지력과 흡수력이 올라가고, 그만큼 몸이 받는 피로가 줄어듭니다.
전력과 조명 — 스스로 해결하는 셋업
- 다이나모 허브 — 앞바퀴 허브 발전으로 라이트와 기기 전원을 충당했습니다.
- 배선 정리 — 발전기 배선은 검정 절연 테이프로 프레임에 고정했습니다. 완벽한 마감보다 현장에서 고칠 수 있는 단순함을 택한 셈입니다.
- 조명과 기기 — 울트라 구간용 전조등과 사이클 컴퓨터, 스마트폰을 모두 허브 전원으로 돌렸습니다.
울트라 레이스에서는 배터리 잔량이 곧 생존 문제입니다. 충전 걱정을 없애는 다이나모 셋업은 무게를 조금 늘리더라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습니다.
구동계와 짐 싣기
기어는 1x 방식에 40톱니 체인링을 사용했습니다. 앞 변속기를 없애 구조를 단순화하고, 험로에서 체인 이탈 걱정을 줄인 선택입니다. 파워미터 기록상 그날 하루 평균 출력은 133W였습니다. 대단히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29시간 동안 꾸준히 밀어낸 '지속 가능한 출력'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짐은 대용량 탑튜브백과 새들백에 나눠 실었습니다. 프레임백 대신 새들백을 택해 메인 트라이앵글의 물병 공간을 살린 것도 실용적인 판단입니다.
타이어 공기압 — 가장 값싼 성능 개선
- 압력을 낮추면 흡수력이 올라갑니다 — 같은 50mm 타이어라도 공기압을 조금 낮추면 거친 노면에서 몸이 받는 충격이 확 줄어듭니다.
- 림 폭과 짝을 맞추세요 — 타이어와 림 폭이 맞아야 코너에서 안정적입니다. 요즘은 25mm 안팎의 넓은 림이 50mm 타이어와 잘 어울립니다.
- 튜브리스가 유리합니다 — 작은 이물질로 인한 펑크를 스스로 막아 줍니다. 실런트를 넣어 두면 장거리에서 특히 안심이 됩니다.
윌콕스가 뒷바퀴에 공기압 센서를 단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장거리에서는 압력이 조금씩 빠지는데 눈으로는 알기 어렵습니다. 수치로 확인하며 관리하는 습관이 완주를 좌우합니다.
부품 선택에서 눈여겨볼 점
- 1x 구동계 — 앞 변속기를 없애 변속 실수를 줄이고 체인 안정성을 높였습니다. 대신 기어 범위가 좁아 오르막에서 힘이 부족할 수 있어, 코스에 맞춰 체인링 크기를 정해야 합니다.
- 전동 변속 — 장거리에서 손의 피로를 줄여 줍니다.
- 바퀴 한 벌로 끝내기 — 예비 바퀴 없이 버티는 셋업은 튜브리스와 실런트, 넓은 타이어에 대한 신뢰가 전제입니다.
우리가 가져갈 원칙
정리하면 장거리 셋업의 기준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거친 노면을 감당할 타이어 폭과 공기압. 둘째, 전원과 조명의 자립. 셋째, 고장 나도 현장에서 고칠 수 있는 단순함입니다. 최고급 부품보다 '깨지지 않는 구성'이 오래 달리는 힘입니다.
그래블은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도 빠르게 자리를 넓혔습니다. 포장도로와 임도, 강변 자전거길을 한 번에 잇는 코스가 늘면서 40~50mm 타이어를 단 자전거로 장거리를 도는 라이더가 많아졌습니다. 윌콕스의 셋업은 그런 라이딩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참고서입니다. 다음 장거리 라이딩을 준비한다면, 부품 스펙보다 타이어와 전원, 수리 가능성부터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