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역사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에디 메르크스'라는 이름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프로 통산 525승, 투르 드 프랑스 5회 우승을 포함한 그랜드 투어 11회 제패, 옐로저지 96일. 경기마다 상대를 압도했다고 해서 '카니발(The Cannibal)'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선수입니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이 바로 이 전설을 기리는 한정판 크로노그래프를 공개했습니다.

브라이틀링 탑 타임 B01 에디 메르크스는 지난 7월 발표된 모델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 시계가 담은 사이클링 역사와 디테일, 그리고 가격대를 정리해 드릴게요.

525라는 숫자의 의미

메르크스는 커리어 내내 무려 525승을 기록했습니다. 여기에는 그랜드 투어 11회 우승(투르 5회, 지로 5회, 부엘타 1회)과 19회의 모뉴먼트 클래식 우승, 세계선수권 3회가 포함됩니다. 브라이틀링은 이 숫자를 모델의 정체성으로 삼았어요. 한정판 수량도 525피스로 정했고, 케이스백에는 'One of 525'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습니다.

  • 노란 다이얼은 메르크스의 투르 드 프랑스 우승, 즉 옐로저지의 색에서 따온 디자인입니다.
  • 6시 방향에는 메르크스의 친필 서명이, 타키미터 스케일에는 그의 이름이 자리합니다.
  • 브랜드 고유의 '스퀘클(squircle)' 모양 서브다이얼은 레이스 타이밍 기기의 언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요소로 설명됩니다.
  • 버섯 모양의 푸셔와 균형 잡힌 레이아웃은 1960년대 탑 타임 특유의 개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디테일입니다.

그랜드 투어 11회 우승은 투르 드 프랑스 5회, 지로 디탈리아 5회, 부엘타 아 에스파냐 1회의 합계입니다. 현대 사이클링에서 이 기록에 도전한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그가 은퇴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깨지기 어려운 기록'으로 회자되고 있어요. 시계에 새긴 525라는 숫자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가 평생 레이스에서 쌓아 온 결과물의 총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시계 자체의 스펙

탑 타임은 1960년대 브라이틀링이 '스피드와 스타일, 자유'를 내세워 선보인 레이싱 워치 라인입니다. 새 모델은 41mm 케이스에 브라이틀링 자체 무브먼트인 매뉴팩처 칼리버 01을 탑재했고, 자동 와인딩에 70시간 파워리저브를 갖췄습니다.

  • 스트랩은 송아지 가죽 레더(폴딩 클라스프)와 스테인리스 메시 브레이슬릿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오픈 케이스백에는 'Eddy Merckx Tribute'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무브먼트의 움직임을 감상하면서 이 모델의 의미를 떠올리게 합니다.
  • 직경 41mm는 드레스워치와 스포츠 워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사이즈로, 데일리로 차기에도 부담이 적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가격은 어느 정도일까

브라이틀링이 공개한 권장 소비자가는 레더 스트랩 기준 약 1,083만 원, 메시 브레이슬릿 기준 약 1,137만 원입니다(작성 시점 환율 기준). 최근 몇 년 사이 자전거와 시계 브랜드의 협업이 이어지면서 가격대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콜나고와 리차드밀이 협업한 세트가 약 13억 원에 달하는 가격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에디 메르크스 모델은 그런 초고가 라인업보다는 접근성이 좋은 편에 속하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금액인 것은 분명합니다.

  • 앞서 브라이틀링은 자전거 역사의 또 다른 아이콘인 파우스토 코피와 지노 바르탈리 에디션도 선보인 바 있습니다.
  • 메르크스의 525승을 기념한 로드바이크 '에디 메르크스 525R'이 최근 출시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눈여겨볼 만한 소식입니다.

브라이틀링과 사이클링의 오랜 인연

사실 브라이틀링과 사이클링의 관계는 이번 한정판이 처음이 아닙니다. 브랜드의 사이클링과의 인연은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사이클링 경기용 스톱워치를 만들었고 1930년대에는 경기용 타이밍 장치를 제작했다고 해요. 항공 크로노그래프로 유명해진 브랜드가 사실은 바퀴 위의 스포츠와 먼저 인연을 맺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레이싱 크로노그래프의 역사가 곧 자전거 경기의 시간 측정 역사와 맞닿아 있는 셈입니다.

브라이틀링은 국내에도 공식 부티크와 온라인 스토어를 두고 있어, 한국에서도 이번 한정판을 직접 만나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525피스 한정 수량이라 매장 재고는 빠르게 소진될 수 있겠습니다.

이번 모델이 속한 탑 타임 라인업은 벌써 세 명의 사이클 전설을 품고 있습니다. 앞서 출시된 파우스토 코피와 지노 바르탈리 에디션은 자전거 역사의 가장 유명한 라이벌 구도를 시계로 옮긴 시리즈였고, 이번 에디 메르크스 에디션은 '최고의 선수'에게 바치는 헌정으로 시리즈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시계 애호가 커뮤니티에서는 자전거에 진심인 브랜드가 만든 진짜 사이클링 워치 시리즈로 자리 잡았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어요.

라이더의 관점에서 보면

수백만 원대를 훌쩍 넘는 시계를 선뜻 구매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제품이 주는 메시지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 꽤 와닿습니다. 메르크스의 525승은 결국 수백 번의 레이스에서 포기하지 않고 달린 결과였어요. 오늘의 라이딩이 쌓여 언젠가 나만의 '525'가 된다는 상상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시계를 차고 달리는 일은 없겠지만, 기록과 역사를 좋아하는 라이더라면 이 모델의 이야기 하나쯤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물론 그 전까지는, 시계 대신 자전거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네요.